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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 클레어 키건 소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다산책방 :다산북스 ( 출판일 : 2023-04-21 )
작성자 : 이○희 작성일 : 2024-05-30
페이지수 : 103 상태 : 승인
*제목: 원형적 감정들의 정수

어린 시절의 감정들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행복함, 설레임, 두려움, 화남이라는 이름표를 내가 느끼는 감정에 하나하나 붙여가는 것도 나이를 먹는 과정일 것이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한 소녀의 내래이션을 통해 그 원형적 감정들의 정수를 기술한다.

한 어린 소녀는 외가 친척 집에 맡겨진다. 엄마와 닮은 친척 아주머니의 손길은 엄마와 비슷하지만 매우 다른 구석이 있다. 집에서 돌봄받지 못해 꾸덕하게 쌓인 손톱 및 때를 핀셋까지 이용해 제거해주는 친척 아주머니. 바닷가까지 함께 산책을 거니는 수더분한 인상의 친척 아저씨. 그 둘은 원부모가 해주는 것 이상(이라고 비견 될 수 없을 정도)의 따뜻한 돌봄을 소녀에게 준다.

아주머니가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샴푸를 짜서 내 머리카락에 칠하고 거품을 낸 다음 물로 헹궈낸다. 그러고 나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천으로 온몸에 비누칠을 한다.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24p)
소녀는 자신의 내면을 "아주머니의 손길이 '친숙'하지만 '낯설'다"와 같은 이름 붙여진 감정으로 기술하지 않는다. 엄마 손 같은데(친숙), 거기엔 또 다른 것,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낯섦)으로 풀어낸다.

우리는 계속 걸어가고, 양동이의 가장자리를 타 넘는 바람이 가끔 속삭인다.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28p)
소녀는 언니들과 동생들이 많고 무심한 부모들이 지키고 있는 그 가난한 집으로 언젠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소녀 안에는 친척 아주머니, 아저씨가 살뜰하게 챙겨주는 데서 오는 '만족감'과 '행복감'이 있으나 그 내면에는 원가족에 대한 왠지 모를 '죄책감'도 상존한다.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공기에서 뭔가 더 어두운 것, 갑자기 들이닥쳐서 전부 바꿔 놓을 무언가의 맛이 난다. 우리는 문과 창문이 활짝 열린 집들과 길고 펄럭이는 빨랫줄, 다른 집 진입로로 이어지는 자갈 길을 지난다.(57p)
소녀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을 이렇게 색깔과 맛으로, 감각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결국 소녀는 '말 없는 소녀(번안된 영화의 제목)'가 전혀 아니었던 것. 그 내면에는 자신에게 몰아치듯 벌어지는 상황들과 그에 따른 감정들을 분류하고 네이밍하는 작업들을 하는데 그 누구보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의 정수들이 모이고 모여 사람은 어느새 유년시절을 지나 성장해가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키건의 (아직 국내에 두 권 뿐인)소설들을 읽고 있으면 흡사 영영사전의 설명 부분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하나의 단어에 대해 세밀하고도 진지하게 기술하는 그 말들을 읽다 보면 짧은 단어 하나만 읽고 마는 것 보다 더욱 깊이 그 단어 하나하나 감정 하나하나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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