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소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다산책방
( 출판일 : 2023-11-27 )
작성자 :
이○희
작성일 : 2024-05-30
페이지수 : 131
상태 : 승인
*제목: 이처럼 사소하지 않은 것들
클레어 키건이 한국에 뜨고 있다. 신형철, 이동진 영화 평론가 등의 추천 및 평단의 찬사 이후로 각 도서관마다 예약이 밀려있는 책 두 권. 그렇다, 한국에 번역된 책은 아직 딱 두 권 뿐. 아마 다음 작품 출시를 위해 출판사와 번역가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열일하고 있을 듯하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스토리는 아일랜드 옛 막달레나 수녀원에 감금되어 학대 당하던 여성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수녀원은 대중을 대상으로 세탁소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더러운 옷을 마치 새 옷처럼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서비스로 정평이 나있다. 카운터 뒤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어린 여성들의 혹독한 노동의 대가였을 것. 소설 속에서는 그 어디에도 학대 당하는 장면이나 고된 노동을 직접적으로 그리는 장면은 없었으나 주인공인 석탄 상인 '빌 펄롱'과 마주치던 그 새끼 고양이 같던 눈빛들, 석탄 배송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감옥 같은 작은 방에서 널부러져 있던 한 소녀의 꾀죄죄한 모습 등을 통해 배후에서 있었던 일들을 가슴 저릿하게 짐작해볼 수 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57p)
펄롱이 그 소녀들에 대한 연민을 보이자 펄롱의 아내 아일린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수녀원은 펄롱 가족이 사는 마을의 실질적 권력자로 군림한다. 수녀원은 막대한 자본을 갖고 마을의 대소사에 관여할 뿐더러 마을에 사는 소녀들은 수녀원이 운영하는 여학교를 졸업해야만 여자로서의 입신양명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5명의 전도유망한 딸들을 키우고 있는 펄롱으로서는 더욱 무시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 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은,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옜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120p)
펄롱은 결국 수녀원에 갇혀 죽어가고 있는 한 소녀를 부축해 데려나오며 생각한다. 사생아였던 자신과 어머니를 거두어줬던 미시즈 윌슨이 자신에게 심어준 사소한 격려와 칭찬과 그리고 그 외 말로 다하지 못한 좋은 것들의 총합을 말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그 켜켜이 쌓인 좋은 것들은 더 이상 사소하지 않은 것들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10월에 나무가 누래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 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Barrow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소설의 첫 문장)
역자의 후기에 보면 클레어 키건은 번역가 홍한별 씨에게 소설의 첫 문장에 내포된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한국어 번역 시 반영되면 좋겠다고 이메일로 설명해줬다고 한다. 작가의 아주 세세하고도 농밀한 문장들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으며 다른 나라 번역에도 반영되게끔 조율하는 그 모습이 흡사 보석 세공사 같아 감탄했다.
킬리언 머피가 주연을 맡아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소식을 먼저 접해서 그런지 주인공 '펄롱'이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의 한 신scene처럼 구성되어 머릿속에 펼쳐졌고 펄롱의 외모도 킬리언 머피로 계속 오버랩되었다. 영화가 출시되면 얼른 관람해서 소설과 영상의 교차 감상의 재미를 만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