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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로이스 로리 글 ; 조영학 옮김비룡소 ( 출판일 : 2011-01-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5-28
페이지수 : 228 상태 : 승인
로이스 로리의 SF 4부작 3편 <메신저>에 도착했다. 3편에서는 드디어 1편의 주인공 조너스와 2편의 주인공 키라가 만난다. '썰매를 타고' 떠났던 조너스는 한 마을에 도착해 '썰매를 타고' 온 지도자가 되어 마을을 비밀이 없는 곳으로 다스린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규칙이 완벽하게 통할 리가 없다. 두 편의 이야기 만나니 줄거리가 다소 복잡해진다.
2편에서 키라의 보살핌을 받던 맷티가 3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자신의 능력을 비밀에 부치기 시작한다. 동시에 다치고 쫓겨난 이주민을 환영하던 마을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진다. 마을 사람들이 거래 마스터에게 '자아'를 팔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봉쇄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된다. 마을의 문제에, 맷티의 문제에, 조너스와 키라가 만나야 되는 문제에, 서사가 긴박하게 펼쳐진다.
맷티의 비밀은 자신에게 생명을 되살리는 치유력이 생긴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제 욕망 충족에 급급해지며 우월해지고 싶어한다. 거래 마스터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병폐가 그대로 그려진다. 맷티의 치유력은 '사랑'이며 그 사랑의 극한은 자신을 버리는 '희생'이었다. 맷티는 조너스와 키라와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위험해지는 숲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죽는다. 흠, 별로 아름답지 않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극한의 설정이라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희생'이 싫다. 자신의 몸을 던져 민들레를 꽃 피우는 <강아지똥>은 화가 나는 그림책 중 하나이다. 괴물로 변한 숲이 세 사람을 공격할 때부터 느낌적으로 맷티가 자신을 희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죽지 않기를 바랬지만 역시나였다. 하나도 숭고하지 않다. 이 마음을 달래려 좀 뒤집어 생각해본다. 맷티가 희생하지 않으면 조너스와 키라가 죽을 뿐 아니라 괴물이 된 숲이 상처 받은 사람들이 오지 못하도록 마을을 봉쇄할 터이다. 제 힘을 외면하고 살아남았다면 누군가 아프거나 다친 걸 보지 못하는 맷티는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살 것이다. 잘못이 아닌 데도 말이다. 해치려 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눈앞에 죽는 사람이 있고 살릴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자신이 죽어야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이타의 최선은 내가 손해보지 않는 선에서다. 그걸 누군가 '이타'냐고 되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기준에 '희생'은 포함되지 않는다.
내가 못하니 싫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가 그래서 '희생'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책임감이 정말 싫다. 없어서가 아니라 많아서다. 조금 나아졌다지만 시간 엄수, 과제 엄수, 최선, 오지랖 등은 나와 너무나 가까운 단어들이다. 지금은 내려놓고 즐기면서 하는 마음이 커졌지만 아직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부분이 좀더 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마도 저런 상황에 놓인다면 난 아마도 울며 겨자 먹기로 '희생'이란 걸 하게 될 거다. 저런 상황이 닥치면 다른 사람이 죽느니 내가 죽고 말지,가 속 편할 거다.
맷티의 몸은 이미 살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기꺼이 제 힘을 쏟는 것은 '희생'이 아닐 수도 있다. 그 기꺼움이 맷티에게는 희생보다는 '기쁨'이자 '사랑'이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지금 불편한 건 '희생' 때문이 아니라 내면의 모순이 충돌하는 인지부조화 때문일 것이다. 하기 싫은 걸 할 것이기에 싫은 거다.
1,2편과 다른 번역가가 번역을 했다. 마을을 공동체로 표기하고, 맷을 맷티로 부르는 등 몇 가지 단어와 문체가 바로 느껴질 정도로 바뀌었다. 결말이 마음에 안드니 달라진 번역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 햐, 내 마음에 괴물이 된 숲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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