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 서은혜 옮김민음사
( 출판일 : 2014-01-01 )
작성자 :
김○진
작성일 : 2026-05-27
페이지수 : 308
상태 : 승인
나는 대학에서 일어일문을 전공하였고, 당연히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이름을 밥먹듯 들었다. 선배들은 '라쇼몬'을 가지고 한 학기를 씨름했고, 매년 '올해는 누가 아쿠타가와 상을 탈까?'하는 궁금증으로 시상식 소식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선배들이 수업에서 '라쇼몬'으로 한참을 고생하며 앓아대는 걸 4년 내내 봐온 탓인지 나는 요리조리 전공필수를 피해가며 간신히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학을 탐구하는 수업을 듣지 않고, 그러니까 '라쇼몬'과 진검승부 하지 않고 졸업했다. (대신 졸업논문으로 만난게 다자이 오사무라니. 지금 생각하면 그냥 라쇼몬을 해야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게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안겨준 영화 '라쇼몽'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태어나기도 한참전 만들어진 영화의 줄거리를 우연히 접하고, 호기심이 생겨 10년 넘게 외면하고 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몬'을 읽기로 결심하고 대출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라쇼몬'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을 모아둔 단편집이고, 그 안에는 '라쇼몬', '거미줄', '덤불속' 등 수작이 가득하다. 사실 읽기 전 가장 기대한 건 아무래도 영화와 같은 이름인 '라쇼몬'이었는데, 아니 이게 웬일. 막상 읽어보니 전혀 다른 내용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덤불 속'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속았군. 하지만 재미있었으니 아무렴 어떻담.
단편들은 대부분 어쩐지 음산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아무래도 그시대 우울한 문학가들의 분위기를 잘 담고 있다. 너무 분위기가 처지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괴담에 가까운 느낌이다. 일본 괴담 특유의 음습하며 축축 처지는, 음산한 분위기. 실제로 그러하기도 하고.
어떤 단편은 기대만큼 좋고, 어떤 단편에서는 기대만 못하기 마련인데, 어느 작품이든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고 싶은 어두운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들이 있어서 좋았다. 특히, '엄마'라는 단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내가 너무 불행한 상황일때 행복해보이는 타인의 불행을 바라는, 차마 입밖으로 내뱉을 수도 없고, 본능처럼 떠오르지만 이성으로 억눌러야하는 그러한 욕망들을 보여주는 글이 예술적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문장의 힘이 있는 글들이고, 단편선이다 보니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