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소설
김애란 지음문학동네
( 출판일 : 2021-05-08 )
작성자 :
조○현
작성일 : 2026-05-16
페이지수 : 337
상태 : 승인
한국 작가들이 쓴 글의 문장력에 반할 때가 많다. 번역책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책 읽는 즐거움을 준다. 이번 김애란 작가의 책으로 예쁜 문장들을 많이 담는다. 더불어 단편소설의 재미를 알게 됐다. 빠른 호흡으로 결론지어지는 문학적 매개물이라고 해야하나. 복합적 의미에 대해 많이 느꼈다. 영화처럼 해석을 보는 재미도 알게 되고. 인상깊은 문장들을 여기 짧게 남겨본다.
그리고 가끔은 원불형의 인디언 천막에 들어가 종알종알 싱그러운 헛소리를 하다 잠이 들었다. 누구와 싸인 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얼굴로.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무고한 얼굴로 잤다. 신기한 건 그렇게 짧은 잠을 청하고도 눈뜨면 그 사이 살이 오르고 인상이 변해 있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욕실 유리컵에 꽃힌 세 개의 칫솔과 빨래 건조대에 널린 각기 다른 크기의 양말, 앙증맞은 유아용 변기 커버를 보며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고 사건임을 알았다. 아내와 나는 식탁에서 영우를 먹이고, 혼내고, 어이없는 말대꾸에 그만 허탈하게 웃어버리고. 그 와중에 권위를 잃지 않으려 재빨리 엄한 표정을 짓곤 했다. 영우는 거기서 젓가락질을 배우고. 음식을 흘리고. 떼쓰고, 의자 아래로 기어들어가고. 울고. 종알종알 분홍 혀를 놀려 어여쁜 헛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거기 사 인용 식탁에서. 식탁과 맞붙은 산뜻한 올리브색 벽지 아래서.
도화는 노량진이라는 낱말을 발음한 순간 목울대에 묵직한 게 올라오는 결 느꼈다. 단어 하나에 여러 기억이 섞여 뒤엉키는 걸 알았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이 떠올랐다. 교회 식당에서 "도화씨가 좋아하는 거 같아 잔뜩 집어왔어요"라고 말하며 흰색 플라스틱 그릇 위에 가득 쌓인 동그랑맹을 자랑하던 모습과 옆면이 새카매진 한국사 교재. 베갯있에 묻은 흰 머리카락, 눈가 주름, 살냄새 그런 것이 밀려왔다. 한겨울, 도화가 오들오들 떨며 현관문을 열면 따뜻한 두 손으로 언 귀를 녹여주던 모습과 여름이면 도화 쪽으로 바람이 더 가도록 선풍기 각도를 조절해주던 이수의 옆얼굴도,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 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마냥. 이수는 이제.... 어디로 갈까? 도화가 목울대에 걸린 지난 시절을 간신히 누르며 마른침을 삼겼다. 그리고 최경위가 나서기 전 재빨리 말을 이었다. 교통방송 때 늘 하는 말, 도화가 신뢰하는 말, 과장도, 수사도, 왜곡도 없는 문장을 풀어냈다.
어머니가 "평!" 불빛을 터뜨리면 선택되지 못한 나머지 풍경이 하얗게 날아갔다. 나는 자주 눈을 감았고 가끔 그 증발이 아까워 환하게 웃었다. 낙하산 줄을 잡아당기듯 입꼬리를 올렸다.
아버지는 우물물 보듯 식은 커피를 응시했다. 그러곤 당장 자신에겐 그것 말곤 잡을 것이 아 무것도 없다는 듯이 손에서 잔을 놓지 않았다. 그 손은 부정을 가려내는 손. 원칙을 세우는 손, 폴트faut와 더블폴트double faut를 외치는 손이었다. 동시에 몇 년 만에 만난 아들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손이기도 했다. 카페 천장 모서리에 달린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댄스가요가 흘러나왔다. 누군가 양동이에 소음을 담아 우리 머리 위에 쏟아붓는 기분이었다.
수도와 지방의 이음매는 무성의하 게 시침질해놓은 옷감처럼 거칠었다. 어둠 너머를 논과 밭이 지루하게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서울 톨게이트쯤 오면 꼬리를 길게 늘인 자동차 행렬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수많은 불빛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중심을 향해 빨려들어갔다.
물론 그중 가장 큰 건 내 '말소리' 그리고 '생각의 소리'였다. 상대가 없어 상대를 향해 뿌어나가지 못한 시시하고 일상적 인 말들이 입가에 어색하게 맴돌았다. 두 사람만 쓰던. 두 사람이 만든 유행어. 맞장구의 패턴. 침대 속 밀담과 험담,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던 잔소리. 농담과 다독임이 온종일 집안을 떠다녔다. 유리벽에 대가리를 박고 죽는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야 나는 바보같이 '아. 그 사람, 이제 여기 없지.....'라는 사실을 처음 안 듯 깨달았다.
나는 그 조리법을 육 인용 병실 간이침대에 앉아 들었다. 환자와 보호자의 침대 높이가 달라 고개 들어 아이처럼 엄마를 올려본 기억이 난다. 내 몸이 다 자라기 전, 적어도 중학생 때까지 나는 엄마를 그렇게 올려보는 일에 익 숙했다. 그런 시간이 있었다. 사람 얼굴을 보려면 자연스레 하늘도 같이 봐야 하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세상의 높낮이가 있었다. 그런데 엄마를 잃고 난 뒤 그 푸른 하늘이 나보다 나이든 이들이 먼저 가야 할 곳을 암시한 배경처럼 느껴졌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시차를 유년 시절 내내 예습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그건 나이든 사람들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나보다 어리거나 내 또래인 이들에게는 당분간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믿었다.
그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드문드문 몇몇 장면들이 멀어지다 끊기며 머릿속에 섞였다. 눈물이 땀처럼 새어나왔다. 감정이 북받치지 않을 때조차 얼굴에 눈물이 진물처럼 고였다. 장례식 날, 남편 영정 사진 앞에 우두커니 않아 있는데 세 살 난 조카가 아장아장 다가왔다 내 여동생이 낳은 남자아이였다. 조카는 어두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고는 그 말도 못하는 애가 자기 손에 있던 과자를 내게 쥐여 주었다.
골목엔 개 한 마리 얼씬대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땐 내가 불 꺼진 유적지나 놀이동산에 몰래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혹은 모든 게 게임 속 배경 같은 착각이 일었다. 마법사에게는 마법사의 자리가, 몬스터에게는 몬스터의 본분이 있듯 이민자에게는 이민자의 자리가, 유학생에게는 유학생의 역할이 정해져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건 웬만한 노력으로는 바꾸기 어려워 보였다. 나는 원주민도 관광객도 아닌 투명한 지위로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이따금 영수증에 찍힌 카드 결제 내역만이 선명한 발자국으로 남아 내가 완벽한 유령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