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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장편소설

최은영 지음문학동네 ( 출판일 : 2021-07-27 )
작성자 : 김○빈 작성일 : 2026-05-13
페이지수 : 344 상태 : 승인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일상생활에서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할 기회가 많이 없어서 슬픈 장편소설을 찾던 중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전쟁 시절부터 현대까지 4대에 걸친 여자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끌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지연'이 희령에 내려가 할머니를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먹한 두 사람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통해 서로 감정을 교류하며 가까워진다. 할머니인 '영옥', 증조할머니인 '삼천', 증조할머니 친구인 '새비', 새비의 딸이자 영옥의 찬한 동생 '희자'. 이 네 여성의 얽힌 이야기는 가슴 아프면서도 더없이 따뜻했다.

전쟁이라는 비극의 시대에 여성들은 주체적인 삶 대신 누군가의 아내 혹은 엄마로써의 역할만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 안에서도 개인이 느끼는 우정과 기쁨, 질투와 슬픔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그들을 입체적인 존재로 표현했다. 특히 '삼천'과 '새비'의 우정이 너무 따뜻하고 부러워서 인상깊었다. 전쟁이 맺어준 생존의 동료로써 서로의 불행을 감싸 안으면서도, 때로는 비겁하게 외면했고, 말하지 않아도 속죄하고 용서하며, 배려하는 마음으로 모른척하는 그 깊은 마음.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진정으로 아끼고 대하는 성숙한 태도라고 느꼈다.
'지연'의 어머니이자 '삼천'의 딸인 '미선'의 인물은 세대 간의 갈등과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미선의 날 선 태도는 사실 그녀 역시 물려받은 상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서툰 아이였음을 보여주는데, 사랑이 회피가 되어버리는 이 굴레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초상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보통 '밤'은 어둠과 고립을 의미하지만 그 앞에 '밝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커다란 위로의 메시지를 더해준다. 삶이 비록 고통스러운 밤일지라도,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그 밤은 충분히 밝다는 다정한 의미를 함축해 놓은 것 같다.
점차 개인주의가 심해져 고립되는 삶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이 소설은 타인과 연결되는 것이 피곤한 일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뿌리가 됨을 보여준다. 그래서 세상이 아무리 차갑고 고립되어 가더라도 다정함만큼은 끝내 포기하지 말아야 할 가치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촛불은 낮보다 밤에 더 빛난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제는 내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탓하기보다는 함께 빛내줄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나 또한 기꺼이 누군가의 빛이 되어주는 그런 따뜻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의 밤이 조금 더 밝은 밤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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