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 송병선 옮김민음사
( 출판일 : 2011-01-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4-07
페이지수 : 251
상태 : 승인
보르헤스의 작품은 처음이다. 악명이 높은 만큼 역시나다. 재독할 수밖에 없다. 재독을 끝낸 후에 묻어두었던 20대 중반의 지식을 그러모은다.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데리다, 해체주의, 메타픽션, 기호학, 푸코의 추... 이 지식들이 없다면 난해함에서 끝났을 소설들.
이 어려움이 대중을 기만하는 것만 같아 나는 어제에 이어 또다시 저항의 독서를 한다. 기만이 아니다, 그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말할 뿐이다, 라고 보르헤스의 변호하려 한다.
전위를 지향하는 모더니즘에 반기를 들며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개념화하기 쉽지 않은, 일부는 여전히 부인하는 현재진행형의 사조이다. 시작과 끝, 확실한 의미를 부여를 통해 정확한 해석을 하려는 모더니즘적 사유 방식을 고집한다면 이 소설은 먼 타인이 되고 만다.
미로의 끝에서 시작되는 미로, 상대를 죽이고 상대로부터 잡히는 이야기, 내 얼굴에서 발견되는 상대의 흉터.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왔음에도 돌고돌아 제자리라는 도식에 빠지기 않기 위해서 또 주의해야 한다. 사라진 플롯 앞에서 무너진 이야기는 끝을 맺지 못한다.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다수임에도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 의미없이 다시 반복될 이야기일 뿐이다.
보르헤스의 이야기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저 여기와 현재가 있다. 그 현재는 우리가 알고 있던 진실이 허상이자 속임수라는 깨달음조차도 힘을 쓰지 못한다. 때문에 이해보다 수용이 중요하다. 수용은 이해가 중요한 고전적 텍스트 가치를 배반한다. 여기에 이율배반이 존재한다. 모더니즘적 사유와 멀어져야 수용되지만, 무엇을 현상화하려는 것인가의 답은 모더니즘적 사유를 통하지 않고서는 도출해낼 수가 없다. 결국 미로를 돌아 다시 미로로 돌아가는 격이다.
여기에는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코 나올 수 없는 미로 속에 빠진 우리가 있을 뿐이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허무하지도 않다. 나갈 수 없는 미로임을 자각한 순간, 나가려 시도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된다. 출구를 찾지 않는 것, 포기가 아닌 다른 삶의 방식, 그 삶의 방식을 찾아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