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뒤에서: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 서제인 옮김생각의힘
( 출판일 : 2025-08-07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6-04-06
페이지수 : 632
상태 : 승인
깊은 인상을 받은 소설을 꼽으라면, 만약 '문제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면 단연코 조지 오웰의 <1984>를 꼽는다. 그러나 강간 미수와 여성 편력이 따라다니는 작가의 삶은 작품이 주는 인상만큼 개운치가 않다. 그런 참에 우연히 책 소개를 접하고는 도서관에 재빠르게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조지 오웰의 아내, '아일린'에 대한 이야기이다.
애나 펀더는 문학으로 권력의 본성으로 파헤치고 체제에 저항했지만 여성에게는 폭력적이며 냉담했던 조지 오웰의 모습과 뒤에서 그를 돌보며 가정 경제를 책임진 아내 아일린을 조망한다. 저자는 아일린이 절친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 몇 통을 실제 있었던 일과 엮어서, 그리고 상상으로 빈 이야기를 채워 아일린을 되살린다. 오웰의 뒤에서 아내로만 남기에는 아까웠던 똑똑하고 멋진 여성이 그려진다.
읽는 내내 느껴지는 작가의 조용한 분노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저항의 독서를 한다. 뻔하게 보이는 의도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싶지 않다. 이러한 독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저자의 회유까지 읽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끈질기다. 주인공이 아일린이건만 그녀가 죽은 이후의 오웰의 삶까지 세세하게 파고든다. 그 집요함에 결국 굴복한다. 아일린이 죽은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자는 분노하지만 정작 아일린에 대해 아무 것도 발견해내지 못한 것만 같다. 그것이 너무나 슬프다.
오웰이 나쁜 놈이라서가 아니다. 저자가 가부장제 아래 차별받는 여자의 모습 외로 아일린의 죽음에서 어떠한 의미도 발견해내지 못하는 것이 서글프다. 세상은 변하기 어렵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저자는 확실히 보여준다. 오웰의 부적절한 행동을 비난하는 것보다 그저 비추는 것이 더 강력한 설득의 힘을 발휘한다. 세상은 견고하다. 저자는 자신의 처지를 그리며 그것을 각인시킨다.
나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차원이나 양상이 조금 다를 뿐 남성도 여성만큼이나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물리적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다. 오웰만큼이나 아일린도 변하기 쉽지 않았다. 오웰의 문학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일린이 오웰만큼 주목받지 못한 것은 화나지 않는다. 그것은 나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누구의 공이 더 크냐를 재며 누가 더 잘났냐를 따지는 것은 그저 피곤한 일일 뿐이다. 위인이 되면 어떻고 되지 않으면 또 어떤가.
작가가 아일린을 기리는 것에 좀더 주목했다면 어떨까. 아일린의 사후 <1984>로 문학적 성공을 거두고 다른 여자를 찾는 오웰의 모습을 다소 냉소적으로 그리며 소리없는 비난을 하는 것보다 아일린에게 좀더 주목했다면 어땠을까. 아일린을 기리고 아일린을 기억할 그런 방법을 찾았다면 어땠을까. 세상이 견고한 것은 변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 사는 것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땠을까.
오웰을 통하지 않고 아일린의 존재를 기억할 수 있는 의미 부여 방법은 없었을가. 그녀의 사후 오웰의 삶보다 그녀를 기억할 다른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