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문학동네
( 출판일 : 2025-07-17 )
작성자 :
이○현
작성일 : 2026-04-06
페이지수 : 527
상태 : 승인
이 책은 반려견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결국 인간이 다른 존재를 어떻게 사랑하고, 또 얼마나 자주 자기 방식으로만 사랑을 해석하는지를 묻는 소설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비숑프리제 이시봉의 계보와 사연이 다소 엉뚱하고 유쾌하게 펼쳐지는 듯했는데, 읽을수록 웃음보다는 미안함과 쓸쓸함이 더 오래 남았다.
특히 이시봉의 '혈통'이 강조되는 장면을 보며, 현실에서 반려견의 품종이나 희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인간의 기준과 욕망으로 그들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인간이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인간의 기준으로 행복을 재단하고, 인간의 사정에 따라 동물의 운명을 결정해왔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나는 실제로 반려견을 키우기에 단순히, 사랑스럽고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이 책은 그 생각이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의 감상일 수 있다는 점을 불편하게 일깨워주웠다.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안에도 소유욕, 자기합리화, 외로움의 보상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아프게 다가왔다.
특히 "인간은 오해하고 오독하면서 동물들의 삶에 관여한다."는 문장은 오래 남았다. 이 문장을 읽으며 꼭 동물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이해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내 경험과 기대를 덧씌워 해석할 때가 더 많다. 나 역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널 위해서"라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묻지 않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이 사랑과 책임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구나를 느꼈다. 마음이 있을 때만 다정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를 끝까지 돌보려는 태도, 그것이 진짜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동물뿐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완전히 이해해서가 아니라 끝내 다 알 수 없어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거리에서 만나는 동물이나, 집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존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질 것 같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을 자각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소설이었다. 명량한 개의 삶을 따라 읽었는데, 결국 나는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자주 서툴고 이기적인지, 그럼에도 더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읽고 나니 마음이 환해지기보다는 조용히 반성하게 되었고, 그런점에서 오래 남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