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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포퍼 논쟁 : 쿤과 포퍼의 세기의 대결에 대한 도발적 평가서

스티브 풀러 지음 ; 나현영 옮김생각의나무 ( 출판일 : 2007-01-01 )
작성자 : 구○욱 작성일 : 2026-04-04
페이지수 : 230 상태 : 승인
이 책의 도입부만 봐도 정말 가치가 있는 책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포퍼가 패배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쿤이 이긴 것일까?

과학적 합리성에 따른 판단이 아님이 내용전개를 통해 드러난다.
애초에 왜 보다 합리적인 지식은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누가 지고, 누가 이기는게 뭐가 중요한가.

더 좋은 지식으로 가꿔나가는게 중요하다.

방금 말한 '더 좋은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포퍼가 말하는 '바람직함'이다.
너무 당연한 말의 나열이 아닌가.

그렇다면 쿤의 이론은 여기에 반론을 들었다는 것인가.
쿤은 '패러다임'을 말하였다. 과학의 발전역사가 매순간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보다
어떤 '이론'이 정립되고, 오랫동안 그 이론이 사실이라 믿어지는 '정상과학'의 시기가 이어지고,
그 이론의 오류가 점점 쌓이다가 더이상 무시못할만큼 쌓이면 '혁명'이 터지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립되고, 새로운 정상과학의 시기가 이어진다.

그런데 바로 전날 읽은 '복잡계'관련 책의 내용이 기억난다.
너무 완벽함보다 약간의 무질서함이 이론을 보다 안정적으로 만들어준다.

또한, 완벽하지 않은 이론으로도 충분한 유용성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주기율표가 있는 지금의 시각에서 5원소설은 '미신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시절에는 5원소설로 농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유용성에 접근하여서
포퍼의 바람직한 태도와 쿤의 패러다임을 인용하여
지식을 추구하는 '바람직한 태도'와 '생산성'도 챙기는
통합이론을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상대적으로,
바람직한 사람이 생산성도 챙기는 것은 쉬웠지만,
생산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바람직함'까지 챙기는 것은 어려웠던듯하다.

다음을 보면서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1) 쿤은 참고문헌도 제시하지 않고, 비전문적으로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발표한 것이고.
2) 쿤은 대부분 사례를 물리학에서 찾았다. 또한, 사회과학 관련해서 자신은 '무지'하며 모른다고 말했고
3) 쿤은 자신의 이론이 '사회과학'쪽에 활용될때마다 거부감을 내비쳤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쿤의 이론을 사회과학에서 활용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게 소위 '자유주의(?)'진영사상과 맞았다.
물론 여기서 자유는 '권력의 철폐'와 같은 자유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하고싶다의 자유와 더 가깝다.

포퍼는 '반증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들은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었고, 그 와중에 지식인들이 서로 진영싸움을 하고,
말바꾸기를 하고, '자신의 이론으로 다 설명가능하다'고 말하고,
예외가 나올때는 '이론에 예외조항을 추가하는식'으로 나오고

자신의 이론의 완전성을 추잡한 방식으로 유지하다 보니
포퍼는 이론을 말할때, '자신의 이론이 틀릴 조건도 같이 말하라'고 했지만
이는 당대의 지식인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조건이었던듯하다.

근데 수전손택의 '해석에 반하여'의 탄생배경과 대중정서를 보면
그 요구가 이해가 간다.

포퍼가 추구했던 '바람직함' (항상 더 잘할 수 있다)은
현실에서는
아무리 대중에게 외면 당하더라도 뛰어난 과학자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동료과학자들이 믿고 있는 것에
항상 도전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쿤의 정상과학 시기에는
이 기본 패러다임에 대한 문제제기를 잘 하지 않는데,
'생산성'을 중시하기도 하지만, 그 권위를 지켜주는 효과도 있다.

포퍼는 심술궂은 독선가로 기억되었다.

즉, 나는 이것을 보면서
지금의 21세기에 돈에 환장한 사람들에게 '올바름'을 얘기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발전을 추구하는 '너무나 당연스럽고 자연스러운 요구'는

그 바람직함이 자신의 이익과 충돌할때
사람들은 극구 거부를 하고, 자신의 이익을 모호한 언어로 지킬때
포퍼의 '반증가능성'은 '계약서'를 작성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금권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포퍼의 태도는 그를 '독선가'로 만들 수 있고,
지금의 테크노만능주의자들이 그러하듯

문제가 생기면 그때 자본과 기술이 모이며 '해결'이 될거라 여기는게
쿤의 이론과 유사하다.

그런데 실제로 쿤은 그런 말을 한적도 없고, 극구거부를 했을지라도
쿤신봉자들은 책에서 말하든 '책을 진짜 읽지도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인가?

정말 이것이 설득으로 가능할까?

나는 포퍼에게 공감이 갔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바람직함을 추구한다고 하여서
다른 사람이 그 마음을 알아주기보다

그 바람직함이 '그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쿤과 같은 인물이나
다른 뛰어난 과학자들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사람이 절대 다수이고,
내가 소수일때, 나는 독선적인 사상가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기술을 택한 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라 생각이 된다.
이 엄밀함 속에서 추론모델은 큰 효과를내고,
과거에는 어떤 이론이 나왔다한들 실질 성과를 내려면 다른 사람들의 동의가 있어야 됐다면

지금은 로봇과 AI가 있다.

즉, 기술자체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슈퍼개인이 생성될 수 있는 이 시기에
(포퍼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리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나는 경쟁사회 구조를 이용하고, 그 유용성을 기술로써 증명하면 될뿐이다.

포퍼와 쿤의 논쟁을 시간순서대로 보여주었고,
저자는 포퍼가 패배했다고 서술했지만

글속에서 이론의 패배가 아닌 사회학적 인정의 패배가 계속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쿤의 이론의 오염이 자주 언급되고,
포퍼의 이론이 빛을 낸다.

과학사의 발전에 대해서도 그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의 인정으로 패러다임이 교체되는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의 데이터정합성이 더 좋은 것이다.
논리적 판단력만 유지된다면 자연스럽게 바뀐다.

물론 사람이 감정적으로 사실을 왜곡할 수는 있지만,
환상은 결국 깨진다는 말처럼
몇 십년간은 쿤의 이론이 우세했을지라도 몇 십년뒤에 쿤의 이론은 잊혀지고,
포퍼의이론에서 발전된 이론이 과학의 핵심이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포퍼와 쿤의 논쟁을 보면서
나는 지금의 이 AI시대에 더 고마워하면서
사람들을 설득하기 보다 기술력을 제공하고
'감정에 의해 비효율적 지식'을 선택하는 자에게
매우 큰 불이익이 찾아오게 하는 사회구조가

사람들을 바꾸게 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포퍼는 '바람직함'을 대중에게 설득하려 했지만,
나는 포퍼의 삶을 보고나서도 확신이 든 것은
그래봤자 독선가 평가나 듣지.

그 바람직한 태도를 가지고 기술적 성과를 내고,
그 기술을 이용할때 '바람직함'을 껴넣어서
거부하는 자들이 도태되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를 만드는게
더 현명하다고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게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철학자가 지배하는 세상이지 않을까.
그게 가능한 사회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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