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
조훈현 지음인플루엔셜
( 출판일 : 2016-01-01 )
작성자 :
이○묵
작성일 : 2025-08-23
페이지수 : 264
상태 : 승인
분평동 에 있는 시립도서관 분관에 갔다가 바둑 관련된 690번 인근 서가를 들여다보다 집어온 책이다.
도서관이 냉방기 공조장치 교체 공사가 잡혀 있어 대출기간을 넉넉하게 받았다.
이병헌과 유아인의 승부를 재미있게 봤었는데, 그래서인지 술술 읽혔다.
바둑이라는 것에서 선수의 커리어나 패권을 잡은 나라가 바뀌어가는 것을 보며 흥망성쇠를 볼 때도 있고, 대세가 되는 기풍의 변화를 보며 무상법을 종종 체감한다. 사제관계에서 청출어람을 요구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선불교의 전등과도 비슷한 면이 있어서 그런지, 흥행을 하든 안하든 소재에 바둑이 들어가게 된다면 챙겨보게 되었다. 그러나 내 기력은 높지 않고, 그러니 글자와 천재들의 삶의 기록에 천착하게 된다. 바둑이 재미있는 점은 1인자가 패배 이후에도 다시 한 번 일어서는 상황을 여러 기사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조훈현도 그랬고, 이세돌도 그랬다. 거의 정권교체급의 패배를 당한 이후에도 스스로를 추스리고 뼈를깎는 노력으로 불새처럼 일어난다. 그런 점이 매력적이다.
승부 이전과 이후의 조훈현의 바둑 인생사를 회고록에 가깝게 보다 보니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어 좋았다.
특히 일본쪽 기원에서 스승으로 두었던 분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한국 기원에 적응하기까지의 이야기. 이창호에게 지고 나서 자기의 수를 다시 닦아나가는 이야기 등은 영화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외전을 보는 듯 했다. 그의 스승도 일본 바둑계의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혼인보 케 는 아니었으나, 그가 키운 제자 셋은 일본과 세계 바둑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지도 방식도 매우 특이했던 것이, 주입식 교육이 아닌 자기의 색을 강화하게끔 양육하는 방식에 가까웠던 것 같다. 조훈현이 군대 가느라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 것을 매우 애닳아 하고, 제자를 식솔로 들여 자비로 키워가는 방식 같은 것은 현대에는 보기 힘든 방식이라 눈여겨보게 되었다. 나중엔 제자를 그리워하며 자결이라니.
그 외에도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9단-10단 챕터 즈음인가, 수를 위한 사색을 위해 주의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여러 현대 문명을 멀리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미 스마트폰에 유도되어 도파민에 뇌가 절여져서 그런지 수도승을 보는 것처럼 신기할 따름이었다.
읽은 지 한참 되어 남아있는 찌꺼기같은 사유만 적게 되는 것이 다소 아쉽다. 이 판은 알파고와의 대국이 진행되기 전의 글이라 자신만만함이 그래도 묻어 있었는데, 재판은 빌려보니 서문에서 알파고에 패배한 이세돌의 이슈 이후에 다시 쓴 서문이 실려 있었다. 사람이 AI에게 넘겨주는 것이 하나 둘 많아지는 시대에 살면서, 그의 바둑과 인생에 대한 감흥을 채록해 두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었다. 이창호의 부득탐승이라는 책도 이 책을 읽은 이후에 보면 좀 느낌이 다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