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의 기억: 강명희 소설집
강명희 지음푸른사상
( 출판일 : 2025-03-20 )
작성자 :
이○혜
작성일 : 2025-08-14
페이지수 : 224
상태 : 승인
독서마라톤에 참여하면서 한동안 독서일지를 쓰지 못했다. 읽는 것과 읽은 것을 정리해보고 독서일지로 기록하는 것은 다른 행위같다. 읽기는 해도 일지로 작성하지 못하는 책들이 쌓여가면서 부담감도 함께 쌓여갔다. 갑자기 시작된 알바, 가족의 수술, 집안일 등 핑게거리도 많았다. 직장을 다니며 벽돌같은 두께의 책들, 제목만 아는 읽기 어려운 책들을 완독하고 주옥같은 독서일지를 써나가던 참가자도 있는데 정말 이 정도야 핑게이지 싶다. 한동안 다른 참가자들의 일지를 읽을 여유가 없었지만 올라올 때마다 찾아읽게 되는 참가자도 있었다. 나도 많이 읽고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참가자들을 떠올리며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다시 용기를 내본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의 일지도 올리고 남은 기간 분발해봐야겠다.
노을의 기억은 강명희 작가의 소설집으로 총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페이스북에서 추천사를 읽고 관심을 갖게 된 책이었다.
추천하는 이의 극찬과 달리 표제작인 <노을의 기억>은 쉬이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서 좀 오래 붙들고 있었다. 제주를 배경으로 4.3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우연히 한 집에서 살게 되면서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였을가.
눈앞에서 남편과 큰 아들이 살해당한 주인공 '안자'는 무슨 정신으로 한 세상을 살아냈을까. 자신과 함께 살아남은 작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 경찰의 집에서 노예처럼 살아내고 버틴 것일까. 가해자인 노인은 젊어서 경비대에 소속되어 산으로 숨어들어간 이들을 찾아내어 사살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잡아내는 것이 애국이었고 나라를 위한 충성심이었다'(46쪽) ㄱ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 앞에 우리는 얼마나 속수무책인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삶을 무너트리기도 한다. 가까이는 작년 12.3 계엄을 겪었다. 만일 그때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군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을까, 아찔한 느낌이 든다.
제주인들이 느끼는 4.3을 안자의 며느리 정희를 통해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들이 감탄하는 굴의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이 4.3을 겪은 제주사람들에게는 다르게 다가온다.
: 굴은 다른 굴과 마찬가지고 학살의 현장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정희는 관광객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아무 생각 없이 관광지를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까닭없는 증오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57쪽)
안자가 경비대에서 근무했던 노인의 죽음을 갈무리하고 땡감으로 염색한 수의를 입히고, 자신도 같은 옷으로 갈아입고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다 읽고 나니 추천인의 말처럼 장편으로 다시 엮어도 좋을 책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