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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5, 광해군에서 인조까지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민음사 ( 출판일 : 2016-01-01 )
작성자 : 서○천 작성일 : 2025-07-30
페이지수 : 301 상태 : 승인
국제 정세에 밝고 백성의 삶에 관심이 많았으나 도덕적 명분론에 쫓겨난 광해군, 도덕적 명분론에는 밝았는지 몰라도 백성의 삶에 관심이 적고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인조 이야기.

1장.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치고 대동법을 처음 실시하였던 광해군의 업적은 폐모살제로 가려지게 된다.

2장. 동양 최고의 의학서라 불리는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은 알고보니 금수저였고, 선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3장. 서자들과 친하게 지내고 홍길동전을 짓는 등 백성들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이상향을 제시했던 허균은 허균을 질투하던 이이첨의 모략과 광해군의 등돌림으로 몰락하게 된다. 마치 조광조를 버린 중종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광해군이 이이첨이 아닌 허균을 끝까지 지지했다면 광해군 말기가 보다 훈훈하지 않았을까?

4장. 폐모살제와 중립외교에 대한 반대를 명분으로 발생한 인조반정. 알고보니 능양군(인조)의 개인적인 원한이 이유였고, 김개시의 배신이 성공의 큰 요인이었다.

5장.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서 소외된 이괄. 하지만 이괄이 반란을 일으킨 건 역모를 걱정한 인조 정권의 기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반란만 발생한 게 아니라 국방력 약화를 가져와 호란에 대한 대처가 어렵게 된다.

6장. 왜란 후 의병에 대한 선조의 홀대는 정묘호란 때 의병들이 적극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배경이 되었고, 인조 정권의 잦은 기찰은 서북방 군대가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여 후금군에게 패하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가도에 주둔하며 횡포 부린 모문룡의 존재는 후금의 침입을 재촉하였다.

7장. 후금이 파죽지세로 성장하는 사이 인조는 아버지(정원군)의 원종 추숭에만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인열왕후 사망 후 조문 온 후금 사절단을 막 대하고, 즉위식에 예의를 갖추지 않은 조선에 대한 청 태종 홍타이지의 분노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고 결국 병자호란이 발발한다.

8장. 세자를 인질로 보내지도 않고, 남한산성에서 시간만 끌던 인조는 강화도가 함락되고, 식량이 동이 나는 가운데서야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그리고 굴욕적인 삼전도의 삼배구고두례가 전개된다. 참고로 인조 뿐 아니라 세자와 신하들 모두 삼배구고두례를 행하였다. 전쟁결과 조선인 50만명이 포로로 잡혀가는 등 백성들의 피해가 극심한 가운데 인조는 대충 사과인지 변명인지 모르는 양해해라는 말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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