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류시화 지음수오서재
( 출판일 : 2023-12-21 )
작성자 :
심○희
작성일 : 2025-07-10
페이지수 : 262
상태 : 승인
지구별 여행자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읽어보는 류시화의 에세이였다. 여전히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주는 글들이었다. 작가가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도 마음도 글도 더 넓어진 느낌이었다. 아니 내가 나이를 먹어 달라진 걸 수도 있다.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그 다른 인생의 기쁨은 부스러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
생각해보면 지금 나의 인생도 어릴 적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었다. 우선 나는 결혼을 안 할 생각이었다. 아이 낳는 건 무서우니까, 결혼하더라도 애는 낳지 말아야지 결심했었다. 지금은 어느새 결혼 20년차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 치고는 내가 굉장히 아이를 쉽게 잘 낳는 편이라는 말을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들었다. 직업은 또 어떠한가? 나는 막연하게 공대에 가려고 했다. 별 이유도 없었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농구팀이 속한 대학의 공대를 가야지! 라고 생각한 터였다. 그러다 수능을 보고 '여자는 교사 아니면 약사가 최고야' 라는 친척 오빠의 조언 한마디에 별 고민 없이 약대로 방향을 틀었다. 둘째 낳기 2주 전까지 일을 했던 나는 둘째를 낳고 8년을 쉬었다. 어느 날 밤 우는 애를 달래며 '이제 다시는 약사로 일하는 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외벌이 남편이 잘못되면 우리 집은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도 있었다.그러다 애들이 둘 다 학교에 들어가고 남편 대신 내가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쳤다. 그렇게 다시 일을 시작하고 조그만 내 약국을 차려 어느덧 10년차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하나도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었고, 남들 눈에 평탄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 스스로는 나름의 치열하고 힘든 상황들을 헤쳐 여기까지 왔고 지금의 나에게 자부심을 느낀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진 작가인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평생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세상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아름다움을 주고, 슬픔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슬픔을 준다. 기쁨이나 지혜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반영이다. p30>
<당신이 싫어하는 것 백 가지를 적어보라. 그러면 그 싫은 것들이 당신 주위를 에어 쌀 것이다. 그 대신 좋아하는 것 백 가지를 적어보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하루하루를 채워나갈 것이다. 당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세상이 당신을 보는 방식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하자 p31~32>
나도 아마 앞으로도 내가 지금 꿈꾸는, 계획하는 인생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좌절하고 우울해 하기보단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 즐거움을 찾고 어려움은 견뎌내면서 그렇게 그렇게 나이 먹고 싶다. 그러기에 작가의 다음 말이 참으로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나는 시간이 약이며 결국에는 다 좋아질 것이라고, 모든 고통에는 메시지가 있다고 말하는 부류의 사람은 못 된다.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도 않은 것이 삶이니까. 부서진 파편들을 서둘러 주워 모으려고 하면 안된다. 파편에 손을 다친다. 단, 이 한 가지를 나는 안다. 칼 융이 말한 대로 우리는 아무것도 치유 받지 못한다는 것, 그저 놓아줄 뿐이라는 것. 우리는 흉터를 보면서 자신이 상처를 극복했음을 알 수도 있고, 흉터를 보면서 상처 입은 일을 기억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