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연극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지음 ; 홍재웅 옮김을유문화사
( 출판일 : 2023-12-05 )
작성자 :
고○철
작성일 : 2025-06-30
페이지수 : 264
상태 : 승인
편식은 나이가 들면서 어느정도 나아진다고는 하지만 끝까지 먹기가 버거운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토마토와 가지가 이에 해당하는 읍식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나에게 여전히 버거운 문학이 있는데 바로 희곡이다. 이 책에는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두가지 희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미스 줄리의 서문에서 작가는 연극을 그림으로 구성된 성서, "빈자의 성서" 에 빗대어 표현한다. 영화는 문자로 쓰여진 각본이 스크린에 영화로 실체화 되는 것처럼 희곡도 연극을 통해 그 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독서하는 방법을 약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모든 묘사는 세계 그 자체를 담고 있지만 희곡에서의 묘사는 무대의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희곡에서 무대는 장르의 근간이지만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기원하는 형식적 특징이 희곡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첫번째 이야기 미스줄리는 세명의 인물과 백작의 저택, 그 중에서도 부엌이라는 작은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스트린드베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이 처한 상황, 그 중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특징적 묘사 덕분에 위에서 설명한 형식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미스줄리는 마치 소설과 같이 무대가 아닌 세계의 이야기로 읽혀지게 만든다. 미스줄리는 보는 시각에 따라 하인과 여주인의 치정극으로, 한편으로는 계급 투쟁의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하인 장과 요리사 크리스틴은 연인 사이이며, 줄리는 모중의 이유로 파혼을 당한 귀족이다. 장과 줄리 사이의 치정극을 통해서 당대에 부조리했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데, 장의 유혹에 넘어가 몰래 사랑을 나눈 뒤 이 사건을 볼모로 장은 줄리에게 여러 강제적인 요구를 하게되고, 줄리와 장의 위치가 역전된다. 허울뿐인 명에에 의해 좌우되는 서회적 지위와 개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이에 종속적일 수 밖에 없던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줄리는 남성과 동등한 여러 교육을 받았고, 그 능력을 발휘할만한 사회적 지위가 있었음에도 당대 사회에서 여정이 가졌던 절대적인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서문이 이야기의 배경, 인물들의 특징, 상황등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고, 앞서 말했듯이 여러 특징적 묘사들로 인해 몰입하기 쉬웠고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두번째 이야기 꿈의연극은 제목에 걸맞게 정확히 꿈과 같은 이야기의 전개를 가지고 있다. 전에 보았던 영화 "지구 최후의 밤" 에서는 꿈이 파편화 된 기억의 집합체이고 이는 영화에서 연속적이지만 개연성이 부족한 배경, 사건의 재구성 등을 통해 표현되었다. 희곡 꿈의연극은 여기서 한층 확장되어 각 장면의 시제, 배경, 인물이 모두 불연속적이며 개연성을 지나 현실과의 핍진성 또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큰 줄기의 이야기는 인드라의 딸이 신의 세계(우주)에서 인간 세상(지구)으로 내려와 인간의 삶을 경험한 후 다시 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약된 이야기만 보았을때는 특별할게 없어 보이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아닌 전개 자체가 난해하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뒤죽박죽 전개되는 이야기, 돌발적인 캐릭터, 비현실적인 세계 등 극의 여러 요소들이 조화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연속적이지 않은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표현했다고 여겨지는지라 각 장의 완성도를 생각해 보았을때, 무대에서 연출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평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란 그렇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있는 세계라고나 할까. 이해가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이 공존하는, 특유의 모자란 핍진성 때문에 더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세계, 그런 세계에 명확함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