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민음사
( 출판일 : 2008-05-02 )
작성자 :
고○철
작성일 : 2025-06-18
페이지수 : 160
상태 : 승인
사강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낭만이 아닐까 한다.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냐고 할테지만 사강은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본 사강의 작품세계에는 이상과 현실의 대립만이 존재할 뿐. 단지 이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소재가 사랑이었을 뿐이다. 의도한건 아닌데 사강의 책을 사랑의 주기별로 읽게 되는데, 읽을때마다 감정이입이 되는 인물이 달라지고 있다. 주요 인물 세명이 나오고 나는 이 책을 세번 완독했으므로 이제야 그들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는데 성공한 것 같다. 사랑에 힘이 있다면 그 힘은 관성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자체로 사람을 이상주의자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사랑이 너와 나를 앞으로, 밝은 미래로 데려가 줄 거라는 그런 희망을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감정이 지나간 자리, 사랑이 힘을 서서히 잃어가는 그때 우리가 이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시몽은 젊은 사랑을 한다. 시몽의 이상은 현재의 사랑을 이루는데 있다. 그에게 삶이란 그저 지루하게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를 갈망한다. 그에게는 현실이라는 다소 사소한 문제를 잊을 수 있게 해주는 이상적 요소, 사랑이 필요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책의 제목이자 시몽이 폴에게 건네는 이 열정과 불안함, 사랑에 대한 확신이 담긴 대사이다. 이런 시몽을 바라보는 폴은 어떠한가? 나이를 먹는다는게 어떤 것인지 시몽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수 많은 이유를 대며 우리는 영원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폴은 알고 있다. 늙는다는게 어떤 것인지, 사랑이라는 열병이 지나간 후에 남은 것들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 폴이 나아지지 않는 로제를 붙잡으며 계속 살아갈 수 밖에 없던 이유, 시몽과의 마지막 순간에 외치던 늙음의 회한. 그 말을 이제는 이해한다. 사랑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랑의 관성을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다릴 것이다. 낭만, 그것이 낭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