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이유정 옮김문학과지성사
( 출판일 : 2013-01-01 )
작성자 :
오○란
작성일 : 2025-05-27
페이지수 : 479
상태 : 승인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단순히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민이라는 감정에 대해 얼마나 깊고 철학적인 알레고리가 담겨있는지 끝까지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작가가 사랑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곧 에디트다. 위태롭고 망가진 제국의 상황은 걸어다닐 수 없고 꿈을 잃은 에디트의 모습과 닮아있다. 또한 집밖을 나설 수 없는 그녀는 그 당시 탄압받던 유대인으로서 츠바이크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주인공 호프밀러 소위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껴 다가가지만 그녀의 주치의는 살아갈 이유가 없던 에디트가 지금은 오직 호프밀러를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아냐면서 어쭙잖은 연민은 오히려 그녀에게 위험할 뿐이라며 그를 만류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현실에 도취한 그는 자신의 연민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실된 감정이라고 믿고 싶어 그녀를 계속 찾는다. 그러다 그는 결국 결정적인 순간 에디트를 외면하게 되고 절망한 에디트는 그를 만나기 전의 계획대로 탑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이렇게만 보면 호프밀러는 악독한 남자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가 에디트에게 보여준 헌신은 진심이었다. 그는 에디트와의 약혼을 부정한 뒤 곧바로 자신의 죄를 후회하고 에디트에게 돌아가 용서를 구하려 했지만 에디트는 손 쓸 틈 없이 세상을 등져버렸다. 이미 에디트는 절벽 끝에 서 있었고, 호프밀러가 잠시 손을 놓음과 동시에 그녀는 미련없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상황을 되돌려보려는 노력조차 않고. 그녀는 그가 날마다 찾아와 베푸는 얄팍한 연민 외에는 살 이유가 정말 한 가지도 없었던 거다. 우리가 정말 호프밀러의 매정함과 죄를 탓할 수 있는가? 나 자신조차도 누군가를 연민하면서 동시에 그 상황에 본격적으로는 엮여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아 애써 눈돌렸던 적이 있다. 얄팍한 연민이라는 감정이 때에 따라 얼마나 위험한 무책임으로 변해버리는지를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몰입도가 정말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