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해온 대답 =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글·사진복복서가
( 출판일 : 2020-04-29 )
작성자 :
이○희
작성일 : 2024-05-21
페이지수 : 298
상태 : 승인
*제목: 작가의 깊은 고독
김영하 작가는 워낙 유명하다. 글도 잘 쓰지만 말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지난해 청주독서대전 강연에서도 2시간 가량을 막힘없이 술술 썰을 푸는(?)데 내용도 좋았지만 그 달변 솜씨에 더 놀랐던 기억이다. 그런 작가의 말솜씨가 그대로 드러나는 작가의 수필이 참 좋다. 오히려 소설보다도 그렇다. 그 특유의 논리정연 하면서도 시니컬하고 담백한 말들 때문이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타고난 여행가 이기도 한 작가의 이탈리아, 그 중에서도 시칠리아 섬 여행기이다. 팍팍한 서울 생활을 돌연 정리하고 작가와 작가의 아내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원래는 여행 프로그램 PD가 먼저 김영하 작가에게 출연을 제안하고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떠나보자고 대답한 것이 시작점이다. 프로그램 촬영 후 너무 좋아서 아내와 한 번 더 길게 여행을 간 것인데 순탄치 않은 그 둘의 배낭 여행 이야기가 즐겁고 정겹다. 작가는 그 여정의 험난함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특유의 재치와 느긋함에서 배운 점도 떠올리며 때로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배경이 된 곳에서 깊은 철학적 사유도 한다.
나는 이 책에 유독 깊이 빠져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근래 읽은 책 중에 손에 꼽게 좋았다고 느꼈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책 곳곳에 작가의 깊은 고독이 스며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이 책은 작가가 소위 지금처럼 '엄청 뜨기 전' 저작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본인의 커리어 뿐 아니라 삶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고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보다 날 것으로 드러내고 있었고, 그런 점이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작가들에겐 어느 특정 시기에만 쓸 수 있는 글들이 있는 것 같다.
여행자로서 문득 느끼는 '향수'의 감정을 선득하게 기술하는 작가의 한마디를 끝으로 감상문을 마친다.
저격수는 멈춰 있는 대상을 노린다.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표적을 지켜보다 조용히 한 방. (13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