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다산책방
( 출판일 : 2023-11-27 )
작성자 :
이○혜
작성일 : 2025-05-16
페이지수 : 131
상태 : 승인
친구들 모임에서 식사를 하고 교보문고를 지나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큰 서점을 지나가는데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책이 진열대에 보이게 놓여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너무 좋았던 책이라고 했다. 나는 클레어 키건의 <남겨진 소녀>를 읽었을 때가 생각났다. 길지 않은 글에서 여백의 아름다움이 느껴졌었다.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으니 좋은 책들이 술술 내게로 다가온다. 최진석님은 어떤 책을 읽어야겠냐는 질문에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으면 우주가 도와서 내가 읽을 책들이 저절로 온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작가가 생각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살면서 지켜야하는 것들,그러나 잊고 살거나 모르는 채 하고 싶어지는 것들일까? 펄롱은 딸들이 성당에서 무릎 절을 하거나 상점에서 거스름돈을 받으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을 사소하지만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펄롱이 창고에 갇힌 아이를 보고 모른 채 할 수 없었던 것이 이처럼 사소한 일이었을까. 시노트의 아이가 길에서 장작을 줍고 있을 때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일이 사소한 일이었을까. 좋은 책은 자꾸 생각을 하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펄롱의 아내 아일린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일이 아니고, 성실하게 사는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선을 긋고 냉정해지는 아일린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나쁘지 않은 것만으로는 제대로 살고 있는게 아닌가보다.
펄롱이 버섯 공장에서 일할 때 손이 더뎌 힘들었는데 돌아보면 다시 버섯 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펄롱은 이 일이 여름내 반복될것임을 예감하고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게는 이 부분이 삶의 은유처럼 느껴졌다. 매일매일 살기위해 해야할 일들. 끝나지 않고 버섯처럼 올라오는 매일의 일들. 펄롱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가족들과 행복한 순간에도 내일 해야할 일들이나 받아야할 외상값을 생각하는 장면도 내가 늘상 하던 일과 비슷하다. '지금'을 즐기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나의 시간을 만끽하지 못한다.
펄롱이 소녀를 데리고 나오는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데리고 나오면서 겪게될 일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럼에도 소녀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온 펄롱은 최악의 일은 소녀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을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 소녀의 손을 잡고 나왔으니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윌슨 부인이 자신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듯이 자신도 소녀의 손을 잡아야한다고 생각했을까.
좋은 책은 우리가 생각없이 저지르는 무례와 폭력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