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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

허먼 멜빌 지음 ; 김석희 옮김작가정신 ( 출판일 : 2019-08-01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5-05-10
페이지수 : 718 상태 : 승인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을 해봐야 한다. 음, 먹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먹을 것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잔치였다. <모비 딕>이 이런 소설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광기 어린 남자의 고래에 대한 집착을 그리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소문은 확인이 필요하다.
내가 놀란 이유는 <모비 딕>이 소설이라기보다는 '고래 백과사전'처럼 느껴진 데 있다. 고래의 습성뿐 아니라 포경선, 고래 포획과 해체 방법, 선원 구성과 작살 사용에 대한 설명이 가득하다. 초반의 도입부를 빼고는 550쪽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서사가 이루어지니 말 다한 거다. 작가 허먼 멜빌의 고래에 대한 박식함에 놀라 검색을 해보았다.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기 힘든 세세한 정보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포경선 선원 경험이 있다. 고래에 대한 묘사를 보면 이건 그냥 '찐사랑'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거대한 향유고래 모비 딕에게 다리를 잃은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 어린 집착보다 고래에 대한 방대한 정보가 훨씬 인상적이다. <레미제라블>을 읽을 때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파리 지하수로에 대한 묘사에 혀를 내두른 적이 있었는데, <모비 딕>은 그 이상이다. 아, 그렇다고 고래에 대한 정보만 지루하게 쭉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소설 스토리도 삽입되어 있다.
고래 이야기는 그만하고 소설의 특징을 정리해보자. 1)역시나 고래, 특히 향유고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필독서. 2) 작가가 재치가 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비유를 하는 문장이 많다. 덕분에 주제와 인물이 무거운 소설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지 않는다. 3)연극톤의 대사와 묘사가 많다. 아예 작정하고 대사와 지문을 넣은 장도 있다. 아이스퀼로스나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읽어봤다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서술에도 살짝 리듬이 있어 변사가 읊조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내용 중 재미있었던 것은 바다 위에서 포경선들끼리 서로 접촉을 하는 부분이었다. 나름의 개성과 사연을 가진 포경선들이 줄줄이 등장해 저마다의 감초 역할을 하고는 사라진다. 그중 고래를 포획하다 바다에서 실종된 두 아들을 찾아헤매는 레이첼호의 선장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되어 함께 찾기를 거부하는 에이해브가 잠깐 밉기도 했다.
하지만 에이해브는 어차피 못찾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바다에서 죽는 것을 뱃사람들의 숙명이라 여긴 것 같다. 어쩐지 나는 에이해브가 죽을 것을 알고, 아니 죽기 위해 모비 딕을 찾아나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집착은 복수가 아니라 자살인 것만 같다. 향유고래는 숫컷 한 마리가 암컷 무리와 관계하며 호위하다 나이가 들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다 죽는다고 한다. 에이해브는 죽음으로 모비 딕과 철저하게 하나가 된 듯하다. 그의 죽음은 완벽한 고독의 완성으로 보인다.
문제는 피쿼드호 선원 모두(단 한 사람 화자만 제외한)가 에이해브와 함께 모비 딕을 공격하다 침몰했다는 것이다. 에이해브는 모비 딕과의 결전을 스스로 원한 것이라지만 선원들은 무슨 죄인가. 운명의 비극은 에이해브가 아니라 선원들에게서 더 뚜렷하게 작용했다. 매력적인 퀴퀘크, 성실한 스타벅, 유쾌한 스터브, 인싸 벌킹턴, 어린 핍 등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것이 운명의 힘이라면 너무나 잔인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나선 선원들, 그중에는 모비 딕에 대한 집착을 광기라 비난하며 강하게 반대한 스타벅도 있었다. 그들을 생각하면 울적한 밤이다. 끝까지 에이해브를 막지 못한 그 선원들의 운명의 책임은 어디에 물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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