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소설
김기태 지음문학동네
( 출판일 : 2024-05-15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5-05-05
페이지수 : 331
상태 : 승인
친숙한 프로들, 익숙한 사건들, 누군가를 연상시키게 하는 인물들. 마치 관찰 카메라로 종일 따라다니며 근접 촬영한 듯 인물들의 시간이 시시콜콜하게 그려진다.
그들은 뭔가를 한다. 엄청나게 애쓰지는 않지만 게으르지 않으며 성실하다. 대단한 목표는 없지만 '나름' 만족할 만한 삶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 '노력' 조금 이상하다.
그들의 노력에는 '추구'가 없다. 뭔가 더 나은 사람이 되거나 어떤 목표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이 요구하는 것에 자신을 적당히 맞추며 산다. 성공조차 적당히 하려 한다. 이 '적당히'도 조금 이상하다.
그들은 적당히 하지만 안주하는 것은 아니다. 타협하는 것도 배려하는 것도 아니다. 피해를 주지 않지만 피해도 받지 않으려는 흔한 개인주의가 아니다. 이들은 눈에 띄지 않으려 한다. 조금의 적극성을 보이는 <롤링 선더 러브>의 '완두'조차 나대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다 읽고 해설을 보긴 전 생각에 잠긴다. 김기태의 인물들은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작가가 인식하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머리 속에 권장생의 <강아지똥>이 스친다. 쓸모없던 강아지똥이 기어코 뭔가를 해내는 모습, 세상의 작은 보탬이 되려는 몸부림. 김기태의 인물들은 이 몸부림에서 벗어난 자의 행보처럼 느껴진다. 세상은 누군가의 쓸모나 기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보편 교양>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꼭 미덕이 아님을 꼬집는다. 곽이 받은 초콜릿은 그의 힘으로 이득을 받은 사람이 주는 성실에 대한 보상과 길들임에 다름 아니다.
김기태의 소설 속 세상은 사람들과 맞물리지 않는다. 세상은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곳이다. 그곳은 개인이 어찌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람의 힘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로나, 우리의 별>을 보면 세상은 개인이 모인 다수가 어찌할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그려진다.
때문에, 무력함이 좌절을 의미하지 않는 것 또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이상함이다. 세상은 그들이 무력하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서로를 흠잡고 헐뜯게 하고 때로 자책케 하며 그들의 힘을 쓰려고 한다. 세상 탓하지 않는 그들은 세상에 문제가 없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적응할 지라도 지배당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지배하려는 힘도 있지만 '우리'도 있다. 그들은 언제든 우리가 될 수 있다.
그들이 여기에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자각'이 나에게 전달된다. 그렇기에 <무겁고 높은>의 송희는 세상의 짐을 내려놓듯 역도를 그만 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빠져 있던 <팍스 아토미카>의 화자는 "나는 활주로 위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