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조셉 콘래드 지음 ;이상옥 옮김민음사
( 출판일 : 1998-08-05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5-05-03
페이지수 : 199
상태 : 승인
우연의 일치. 누군가의 추천으로 대출한 책인데 얼마 전 읽은 리베카 솔닛의 <야만의 꿈들>에 이 <암흑의 핵심>이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무시하지는 못할 '의미'로 언급되어 있다. 솔닛은 <암흑의 핵심>에 대한 세간의 평가(작품과 문학사적 의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먼저 이 책을 읽고 솔닛의 책을 읽었으면 좀더 좋았겠지만 우연찮게 대출이 겹쳐 바로 읽을 수 있어 괜찮기도 했다. 연달아 읽은 탓에 두 책을 같이 엮어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은 유럽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 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아프리카로 파견된 말로가 연락이 두절된 능력 있는 주재원 '커츠'를 찾아 정글 속으로 들어간다. 커츠에 대한 무성한 소문을 들으며, 정글 속 원주민과의 긴장된 대립으로 일촉측발의 충돌 위험 속에서 찾아낸 커츠는 예상과 다른 뜻밖의 행태를 보여준다.
읽고 나니 이 책에 대한 솔닛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나름 정리가 된다. 그녀는 요세미티에 살던 아와니치족과 관련된 백인 새비지의 약력에 대해 추적했다. 솔닛은 영웅처럼 묘사된 새비지의 실체를 쫓으며 원주민들의 삶에 끼친 그의 부정적인 영향을 밝힌다. 커츠는 그런 의미에서 거의 새비지와 동일시된 인물이다.
역자 이상옥은 후기에서 이 작품을 '자기 발견의 여정'이라 평하지만 그러한 해석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솔닛 역시 이러한 비슷한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는 <암흑의 핵심>이 자연을 도구로 보는 편향적 관점을 전하고 제국주의의 횡포보다 개인의 내면에 치중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솔닛의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둘다를 포함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다.
말로는 커츠를 둘러싼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커츠를 둘러싼 사람과 고용 관계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신이 도구이면서도 사람을 도구로 쓰는 커츠의 모습을 목격한 말로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 상처 받는 누군가 있거나 사실이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트는 회사가 자신의 공적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남의 것을 훔치는 주제에 제 몫을 챙기며 결국 자신이 왕이 되려는 커츠의 모습은 당시 유럽의 강대국들을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강한 모습 끝에는 나약함과 두려움이 있다. 작가는 지배 욕구와 물질에 대한 욕망이 결국 자신을 먹어버려 착각과 망상 속에서 자신을 잃는 당시 상황을 엄중하게 경고하는 듯하다. 커츠의 내면은 제국주의의 내면에 다름 아니다. 나약한 커츠의 내면을 밝히는 것은 제국주의와 그와 유사한 다른 폭력의 횡포를 경계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작품 속 사람들처럼 솔닛도 역자도 나도 작품에서 보고싶은 것을 본다. 다양한 관점과 해석, 소설을 읽는 큰 재미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