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의 역사 = (The)history of human nature
홍일립 지음한언
( 출판일 : 2017-01-01 )
작성자 :
이○묵
작성일 : 2025-05-01
페이지수 : 1182
상태 : 승인
오늘도 평화로운 오창도서관.
비도와서 사람도 없는 썰렁한 서가 사이를 돌다가 왜 이런 두꺼운책을 찾지 못하였나 하고 들어올렸다. 새책에 딸린 광고 일러스트가 붙은 책갈피와 책끈이 코브로보다 똬리를 잘 틀고 있어서 아무도 안 본 책 같지만, 원대한 지적 욕구를 가진 누군가가 몇 페이지 들춰보다 밑줄은 그어놨다. 페이지가 182페이지가 아니라 1182페이지다. 오창 호수도서관과 오창도서관에 정리 작업 과정에서 페이지 수 오기가 일어났다. 다른 도서관의 같은 판본을 보면 페이지수가 제대로 되어 있는 듯 하다.
나를 알기 위해, 과학자의 입장에서 인문학을 포섭하여 다룬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 (에드워드 윌슨 1978)을 읽고 뭔가 비판하고 싶은 생각에 짧게 시작했다가 일이 커져서 이렇게 두껍게 썼다고 한다. 그리하여 결국 서문에선 이걸 학생이나 연구자나 읽지 누가 읽겠는가 하고 읽을사람만 읽으라는 당당함을 내보인다. 그래.... 차라리 벽돌책을 내려면 그냥 이런 태도가 솔직하고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인간 본성을 논하다 보니 다시 윤리시간에 배웠던 성선설 성악설 등이 나오고, 서양의 이성의 발견이 나오고
근대철학에서 더 고도화되고 계몽된 이성이 등장한다. 4부 넘어가면서부터는 파레토 보아스 마르크스 뒤르켐 등의 철학을 넘어간 사람들의 견해도 등장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가설이나 스키너의 행동주의도 이 챕터에 등장한다.
5부는 다윈의 생물학적 자아견해에 대해서 논하고, 6장은 리처드 도킨스로 대표되는 생물학 주의를 다룬다.
약 70페이지의 7부를 쓰기 위해 서설이 저렇게 길었나 보다. 거의 클래식 대곡 하나 들은 기분이다. 인간 본성을 논하는데 불교를 거의 다루지 않고도 이렇게 길게 쓸 수 있네 싶었다.
결론은 결국 과학자들이 뇌내 작용으로 인한 나의 선택과 자유의지가 있는가 결국 다 호르몬 작용과 본능의 인도 때문은 아닌가 하고 사람의 주체성을 의심하는 단계에 이르러,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실험을 계속해 나가는 행위가 다소 정말 그러냐 하고 질문을 던지는 수준에서 끝나고 있다. 속으로는 과학자들의 그런 시도가 헛짓거리라고 생각하더라도 일단 표면적 언어에서는 그런가? 하고 거리를 두고 불가지론적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랭험처럼 침팬지를 수십년 동안 관찰하면 성악론자가 되고, 드 발 처럼 보노보의 공감행동을 보면서 성선론에 기운다면 생물학적 증거가 어디있냐고 신랄하게 꼬집은 부분은 어록으로 남을 것 같다.
나 역시도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참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런 고민을 놓아버린 이후부터는 세상사에 대해 화가 많아지고 신랄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내 본성을 자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멋대로 산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인 것일까? 호르몬이 이끄는 대로의 삶 말이다.
이렇게 길게 써놓은 책에도 결론은 쉽사리 내지못하고 끊을것 같으면 이 고민에 이르는 지난한 사유가 그 목적인가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책장은 덮여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