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 기형도 30주기 기념 기형도 시전집
기형도 지음문학과지성사
( 출판일 : 2019-03-07 )
작성자 :
양○영
작성일 : 2025-04-30
페이지수 : 180
상태 : 승인
미루고 미루다 반납일 직전에야 집어든다. 기형도의 시를 다 보지는 못해 '전집'이란 말에 끌려 대출했지만, 그의 시 무게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을 잘 알기에 자꾸만 보는 것을 미룬다.
데드라인에 쫓기듯 집어든 시집 속, 촘촘히 종이 공간을 가득 메운 그의 언어는 역시나 무겁다. 공허와 허무는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보이지 않게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러한 정서와 비애가 가득 깔려서인지 그의 시는 나를 누른다. 내려앉다 내려앉다 결국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의 어찌할 줄 모르겠는 마음처럼 느껴져 안타깝다.
예언의 신탁을 받았지만 아무도 그의 예언을 믿지 않는 카산드라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기형도는 바라보지만 들어가지 못한다. 현실의 밖에 머물며 삶의 의미없음에 너무나 깊이 천착한다. 이러한 자신을 잘 알면서도 달리 수가 없다. 때문에 슬픔과 분노를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한다. 그래 봐야 크게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다치더라도 좀 부딪히고 애써봤다면 어땠을까. 고인이 된 시인의 삶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시집이 어찌 보면 나를 비추기도 하기에 이런 감상을 남긴다. 그는 한때 '나'의 거울이었다. 때론 소용 없은 짓을 하는 것일 삶이기도 하다.
그의 시 "길 위에서 중얼걸리다"의 한 대목은 이러하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찾지 말라는 말이 찾아 달라는 말보다 더 간절한 것은 더 말해 무엇하랴. 시인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지난 시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을 다독인다. 희망도 절망도 길 위에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