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초록 천막. 2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 승주연 역은행나무
( 출판일 : 2023-07-07 )
작성자 :
심○희
작성일 : 2025-04-18
페이지수 : 536
상태 : 승인
스탈린 치하의 소련 모스크바에서 살던 세친구 일리야, 사냐, 미하는 문학선생님과의 일명 '러문애' 라는 산책을 통해 문학적 감수성을 키우며 성장한다.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면서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물론 그 후에도 그들의 우정은 계속 이어진다.
<일리야는 미하가 혁명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도 아무말 하지 않았다. 사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우정은 사소한 견해차이와 서로 관심분야가 다른 것도 견뎌내는 법이니까 말이다. P258>
문학마저 검열이 당연시되는 소련에서 세명의 친구들의 고난은 예상되는 바였다. 금서를 모으고 반체제인사들의 글을 받아 서방에서 출판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던 일리야나 혁명을 담은 잡지를 비밀리에 출판하던 미하의 경우가 특히 더했다. 결국 일리야는 소련을 탈출해야만 했으며, 소련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차마 떠날 수 없었던 미하는 결국 다른 방법으로 삶을 끝내는 선택을 하게 된다. 남은 사냐도 도저히 소련에서는 버티기 힘들었기에 미국친구의 도움으로 결국 소련을 빠져나오게 된다. 책은 당시 소련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 시간의 횡포속에서 발을 헛디뎠거나 잘 버텼거나 힘든 삶을 살아낸 증인들, 영웅들, 무고한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합니다.>
소설에서 러시아왕정시대 귀족 출신의 사냐의 할머니, 특히 사냐와 미하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안나 알렉산드로브나의 죽음이 인상깊었다. 할머니의 죽음은 힘든 시기를 보내던 사냐와 미하에게 정신적으로 치명타를 주게 된다.
<안나 알렉산드로브나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한평생 끊임없이 이끌어왔던 모든 사내아이들과 여자아이는 영원히 잃어버렸다. 합리적 사고와 그에 대한 냉소, 삶에 대한 신뢰와 사람을 한눈에 간파하는 예리한 판단력, 지혜와 엉뚱한 발상이 황금비율로 섞인, 가볍고도 즐거운 그녀의 지휘감독을......P398>
당에서 살 아파트를 지정해 준다든지, 결혼 후에 분가하는게 아니라 여자쪽이든 남자쪽이든 부모님 집에 들어가 함께 사는게 당연시된다든지 하는 생소한 당시 소련사회 모습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신선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왜 제목이 '커다란 초록천막'일까 인데, 이 제목은 소설속에서 올가가 꾸는 꿈이 나오는 소단원 제목이기도 하다. 옮긴이 해설을 읽어봐도 제목의 의미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