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에서 실천으로, 많은 이들의 삶의 방식을 바꾼 현대 윤리학의 고전 지구 반대편의 난민에게 기부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일까? 아무래도 이와 같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질문자에게 어렴풋한 반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눈앞에서 얕은 연못에 빠진 어린이를 구두가 더러워질까 봐 구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일까? 이 질문에 “당연하지”라고 말하는 순간, 피터 싱어가 숨겨 놓은 논리적 덫에 걸려 예상치 못한 결론을 마주하게 된다. 싱어의 급진적인 주장에 따르면, 눈앞의 어린이가 물에 빠져 죽게 내버려 두는 것과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죽는 아이를 방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차이가 없다. 전자의 경우 옷이 흙탕물에 젖는 정도의 불편만 감수하면 아이를 살릴 수 있고, 후자의 경우 며칠 커피 값 정도를 포기하면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는 것은 둘 다 도덕적 태만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기부하는 사람은 그 인품을 칭송받으나, 기부하지 않는 사람은 별다른 비판을 받지 않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그렇다면 멀쩡한 핸드폰을 새 기종으로 바꾸고, 카페에서 작은 사치를 누릴 때도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는 건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이에 대한 피터 싱어의 대답은 강경하다. 몰랐어? 그럼 도덕적으로 산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았어? 사람들 간의 물리적 거리가 도덕적 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 책의 반직관적인 주장은 윤리학의 큰 논쟁거리가 되었지만,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꿨다. 실제로 피터 싱어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소득 40%를 기부하여 그의 철학을 실천으로 옮겨왔으며, 한 대학생은 이 책을 읽고 모르는 사람에게 신장을 기부했다. 나아가 빌 게이츠와 ‘효율적 이타주의자’를 자처하는 실리콘 밸리의 기업가들도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을까? * 50년 전 출간되어 여전히 중요하게 논의되는 피터 싱어의 에세이 〈기근, 풍요, 도덕〉과 이후 쓴 두 편의 글을 엮은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