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책)은 인쇄되어 묶인 물질이다. 이 책은 인쇄물(printed matter)이면서 디자인물(designed matter)이고, 구체적으로는 열 사람 생각의 묶음이다. 이 책의 모든 글은 디자이너가 쓴 것이다. 아니, 글을 쓴 것이 먼저고 자신이 쓴 글을 스스로 디자인했으니 이렇게 고쳐야겠다. 이 책의 디자인은 저자가 직접 한 것이라고. 그러나 이 문장도 만족스럽진 않다. ‘디자이너’라는 나도 남도 알아볼 수 있는 인덱스가 하루아침에 주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글을 쓰거나 산책을 하거나 양치질을 하거나 여하튼 디자인을 하지 않을 때도 그들은 디자이너이다. 보통은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야기의 말미에 등장하는 우리의 영웅들이, 이 책에서는 맨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책에서 어떤 문제, 대화, 이야기의 장본인이 된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운을 떼고 마무리 짓는 데 낱말 matter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물질이자 문제이면서,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뜻을 실어나르는 친구이다. ‘문제없다’의 경쾌함을 발산하는 디자이너와 ‘문제없다’의 비현실성에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 디자이너가 한자리에 묶일 수 있게 된 것은, 어떤 물질이든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며, 한 인간이 문제 삼는 항목이 공동체에 역시 긴급한 사안일 수 있음을 환기해주는 matter 덕분이다. 글쓴이의 소개에 그가 쓴 글에서 추출한 몇 개의 낱말을 인덱스로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