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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島万次, 임진왜란연구의 재조명
역사
도서 北島万次, 임진왜란연구의 재조명
  • ㆍ저자사항 기타지마 만지 지음;
  • ㆍ발행사항 파주: 경인문화사, 2019
  • ㆍ형태사항 458p.; 24cm
  • ㆍISBN 9788949948447
  • ㆍ주제어/키워드 임진왜란 조선중기 전쟁사 조선사
  • ㆍ소장기관 청주시립도서관

소장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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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0000156134 [시립]종합자료실(재개관)
911.0553-기831ㅂ김
대출가능 상호대차

상세정보

명나라를 정복하고 동아시아 세계군림의 야망을 품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첫 단계로 1592년에 조선에 군사를 이끌고 일으킨 임진왜란은 1598년 히데요시의 사망에 의해 그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전후 7년간에 걸친 전쟁은 이후의 중국 조선 일본의 역사에 나름의 후유증을 남겼다. 중국의 경우, 명조가 붕괴하고, 명나라로부터 미개인 즉 이적(夷狄)으로 멸시 당했던 여진(女眞)이 청나라를 수립한 것이다. 임진왜란 후, 명나라는 국가 재정이 궁핍하여 재정난을 인민에 대한 증세로 극복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명나라 조정에 대한 인민의 불만이 축적되어 갔다. 한편 여진 지역에서는 1613년, 건주위(建州衛)의 여진 누르하치가 바다 서쪽 여진오랍(女眞烏拉)을 멸하고 여진족을 통일했다. 그리고 1616년, 누르하치는 한위(汗位)에 올라가고, 국호를 후금(後金)으로 정하고, 천명(天命)이라고 건원(建元)하였다. 이어 1618년 누르하치는 명나라에 선전포고하고, 명나라가 건주여진(建州女眞) 통제의 거점으로 하고 있던 무순위(撫順衛)를 함락시켰다. 이에 대해 명나라는 후금 공격에 나섰지만, 1619년 누르하치는 살리호 전투에서 명군에 대승했다. 이후 1625년 후금은 도읍을 심양에 옮겨 이듬해 1636년 후금의 태종은 국호를 청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먼저 지적했던 명나라 조정의 증세에 대한 불만은 1644년, 은천(銀川)의 역부였던 이자성(李自成)이 농민반란군을 이끌고 북경을 함락시키고, 명나라 황제 숭정(崇禎)이 자해하므로 명나라는 멸망했다. 이후 청나라는 숭정황제의 신하인 오삼계(吳三桂)가 북경을 점령한 이자성을 뒤쫓아, 북경을 빼앗은 것이다. 여기에 화이변태(華夷變態: 중화가 夷狄로 모양을 바꿈)라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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