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시인선 223권. 이기영 시집. 이기영의 시들에는 이국적인 명사가 자주 나타난다. 이국의 지명, 이국의 사람, 이국의 생물에 대한 이름들. 이런 부분에서 그의 시는 이국적 정서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닿는 이국은 희망과 충족의 땅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이국의 삶들도 그의 지향점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 그의 작품에서 화자는 이러한 이국에 도달하지만, 도달한 후에도 쓸쓸함만 남는다. 결국 이기영의 시는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 닿으려 하는 끝없는 시도이며, 잡아낼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하는 몸부림이다. 이런 닿을 수 없는 끝에 대한 끝없는 지향이야말로 그가 진정한 시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며, 우리는 이 시집에서 시란, 시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온몸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