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의 난’ 후의 전한 시대. 이 혼란기에 황제가 된 문제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정치서 <서경>을 태자에게 가르치려 했다. 하지만 시황제의 분서갱유 이후 <서경>을 포함한 사서오경을 연구하는 유학은 쇠퇴. 유학자의 수 역시 크게 줄어 있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유학자들 중 복승이라는 뛰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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