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자가 창조적 사유로 쓴 중국철학사. 이 책은 두 가지 전제, 즉 중국이라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유구한 역사”와 “자족적 문화”라는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회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는 중국철학사를 “타자와 디아스포라에 내몰린 문화 정체성의 끊임없는 재구축의 여정”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본다. “단순히 한국 사람이 중국철학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펑유란과 다른 중국철학사를 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저자가 그간 썼던 글을 모은 것이다. 중국인은 삼대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타자와 대결하면서 자립을 유지하거나 유배 또는 식민의 상황으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시대정신을 재구축해왔다. 현재 중국은 문화 정체성을 과도하게 실체화하여 애국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로 이루어진 중화주의로 결정화시키고 있다. 제자백가와 성리학과 같은 전근대의 문화 정체성은 다시 역외로 확산되고 동아시아 문화의 동일성으로 상승할 정도로 보편성을 획득했지만 중화주의와 같은 근현대의 문화 정체성은 동아시아 문화로 확산되지 못하고 갈등과 대립을 유발한 채 타자를 흡수하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