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를 꿈꾸는 시 변홍철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제3세계/ 어디에도 없는 너를 부른다”고 적었다. 이른바 ‘제3세계’는 예전에 서구 자본주의 사회와 동구 사회주의 사회가 아닌, 남반부 나라들을 가리켰고,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서구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으며 독립 이후로는 서구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지속적인 수탈을 당한 곳이라는 것이다. 이 역사적인 언어를 변홍철 시인이 다시 들고 나온 것이 심상치가 않지만 시인이 말하는 ‘제3세계’는 시가 “우정의 도구”로 쓰이는 세계이기도 하면서 “세 칸 또는 네 칸짜리 열차가// 오 분이나 육 분 늦게 온다는 안내 방송,// 들을 때마다 마음이” 놓이는(「서경주역」) 카이로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 역사와 현실을 방기하는 시간이 아님은 물론이다. 시인은 슬픔마저 “잘 삼키었다가/ 빛나는 종양/ 열매로나 맺자”(「모과꽃」)고 말하면서 “오 분이나 육 분”까지 딱 맞게 굴러가는 지독하게 효율적이고 공리적인 현실의 틈에서 “출출한 불빛”(「시장통」)을 꿈꾼다. 밝고 화려한 불빛이 아니라 “출출한 불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