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같은 사건으로 인해 앤은 무뚝뚝한 남매와 만나고 그들과 가족이 된다. 주근깨 가득한 붉은 머리의 고아 소녀 앤은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 팬처럼 우리의 가슴속에 어떤 고유명사로 청춘의 숨을 쉬고 있다.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연극으로, 동화로, 그림책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름 빨간 머리 앤은 어쩌면 우리가 간직해온 가장 친근한 문학적 캐릭터이자 우리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콤플렉스 가득한 앤의 삶 속으로 찾아오는 사건들은 유별나게 비극적이거나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그녀는 특별한 우리 자신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주근깨 같은, 적색 머리카락 같은, 밉상 같은 하나씩의 결점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인생은 실수의 연속 속에서 필연처럼 펼쳐지는 운명임을 앤을 통해서 확인받고 싶어한다. 어제 만난 빨간 머리 앤을 오늘 다시 만나도 새로운 이유, 그 어느 장면을 펼쳐도 슬픔보다 기쁨이 앞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