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단편 환상문학, 그 빛나는 성취! 20년 동안 거울이 지켜온 신비하고 경이롭고 으스스하고 돌아버린 이야기들! 김보영, 배명훈, 정세랑, 정보라, 곽재식 등 한국 장르소설의 대표 작가들을 배출한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대표중단편선 그 열여덟 번째 이야기! 며칠 째인지, 몇 달 째인지, 몇 년 째인지 알 수 없지만 ‘하루’를 반복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 흔한 얘기죠. 주인공은 그 반복을 견디기 위해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좀 쓸모 있는 일들을 위해 노력합니다. 열심히 노력은 하지만, 그 숱한 타임루프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아주 절실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쓰던 소설을 마저 쓰고, 한 끼의 식사를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남는 시간에 세상을 위해 조금, 아주 조금, 할 수 있는 만큼만 애씁니다. 아무리 무한의 시간이 주어져서 끝없이 하루를 반복한다 한들 거창하게 세상을 구하겠다고 설쳐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 일상에서 어쩌면 가장 놀라운 사건은 화장실에서 하얀색 음모를 발견하게 되는 일 따위입니다. 어제와 똑같은 반복되는 시간인데, 음모만 하얗게 쇠다니 이건 또 무슨 일이랍니까. 환상문학웹진 ‘거울’이 창립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20년쯤 한 가지 일을 계속하다 보면, (사실 그와도 상관없이) 그 시간이 선형으로 흐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20주년을 맞이한 대표중단편선의 표제작이 타임루프물 〈하얀색 음모〉라는 점은 문득 피할 수 없는 운명 같기도 합니다. 떠난 이도 남은 이도 새로 합류한 이도 많지만, 20년간 어느 하루 빠짐 없이 거울의 작가 중 누군가는 시지프스처럼 글을 써 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얀색 음모》는 아작에서 출간하는 다섯 번째 (책으로는 여섯 번째) 거울 대표중단편선이기도 합니다. 지난해와 또 무엇이 달라진 거울의 모습일지 꼼꼼히 헤집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올해도 환상문학웹진 거울 대표중단편선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